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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단
지난 3월 9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은 객석도 로비도 발 딛을 틈도 없이 사람들로 붐볐다.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주최한 '가야금 교향악 대학축제'가 열렸기 때문이었는데, 이 날 공연은 아마도 단일 악기로 열린 최대 규모가 아닐까 싶다.
이와 비슷한 공연이 십년 전인 94년 국악의 해에 있었는데 그때에는 산조가야금 130대가 동시에 무대에 올랐다. 94년과 2004년, 10년을 관통하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무엇보다 가야금이란 악기를 통한 무대였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모두 황병기선생의 곡이 연주되었다는 점이다.
당시는 침향무를 연주했고, 이번에는 25현 가야금으로 연주케 편곡한 교향악곡들이 연주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연주곡들은 특별히 클래식 애호가가 아닐지라도 익히 들어봄직한 곡들이다. 베토벤의 운명과 전원, 타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인형, 비제의 카르멘조곡 등이다.
이러한 교향악곡을 8파트로 나누어 가야금만으로 연주를 한 것이었다. 이날 공연에는 앞서 말한 대로 일곱 개 대학이 참가하였다. 기존에 꾸준한 연주와 음반 발매도 하고 있는 숙명여대를 비롯하여 가야금 앙상블 사계를 배출한 서울대, 중앙대, 이화여대, 추계예대, 한양대 그리고 주최측인 한예종이다
가야금 교향악 대학축제 중 한예종 연주단 사진
그들 모두가 한 무대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24명에서 32명에 이르는 각 대학의 편성으로 보자면 가야금이 적어도 200대 이상이 무대에서 연주된 것이니 우리 나라 국악사에 하나의 기록으로 남을 중요 공연임은 분명할 듯하다.
이번 공연을 위해 편곡자인 황병기선생은 2년의 공을 들여 곡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또한 우리 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교향악을 가야금으로 연주함으로써 일반인에게 가야금을 조금 더 접근시키려는 목적과 더불어 각 대학들이 가야금을 주제로 한 축제를 열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각 미디어들의 관심도 상당히 높았다. 한국방송과 K-TV가 녹화를 해갔으며 국악방송에서는 실황을 그대로 중계하였다. 공연장 안팍으로 관심을 집중시켰던 이날 가야금 교향악 대학축제는 분명 봄을 맞는 커다란 축제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에 따르는 아쉬움도 적지 않았다. 공연이 끝난 후 국악계 인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날 공연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여러곳에서 발견되었다. 잘했다와 못했다가 당연히 교차되는 자리에서 공통적인 이야기는 아마도 국악이 언제까지 서양음악에 대한 강박을 벗어날 것이냐는 자탄에 가까운 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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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교향악 대학축제 중 중앙대 연주단 |
또 하나는 연주곡에 대한 음악적인 불만이었다. 교향악곡을 굳이 가야금으로 할 이유가 있었겠느냐는 것인데, 연주 가능성 여부를 떠나 교향악을 연주하는 데에는 차라리 국악관현악 편성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날 연주는 하나의 실험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큰 행사였기에 교향악에 대한 가야금 연주는 조금 과한 욕심이 아니었나 하는 지적들이 있었다. 이러한 논쟁은 그날 늦은 술자리까지 이어져 여느 공연의 단순 뒷풀이와는 사못 다른 양상을 띄었다.
당일 공연의 사회를 맏기도 하였던 음악평론가 윤중강씨에게 정리를 부탁하여 보았다.
"저는 일단 긍정적으로 보고 싶습니다. 만약 가야금의 음악적 시도가 그날 공연 하나였다면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황병기선생께서 기획하시는 일련의 일들을 유기적으로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일례로 이원문화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는 가야금 유파 10바탕전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민족악기는 분명 세계악기의 하나로써 민족의 감성뿐만아니라 세계의 감성을 수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악기로써 당연히 우리의 음악어법을 충족하면서 동시에 세계어법을 갖춘다는 거시적 시각으로 이날 축제를 바라보고 싶네요."
반면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송혜진 교수는 다른 시각으로 이날의 이벤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국음악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우리음악의 특성상 개인별, 소그룹별 진지한 모색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보고 있는데요 한 작곡가가 외국의 유명한 곡을 편곡하여 각 대학이 획일적으로 연주케 한 축제의 구도가 그러한 진지한 모색과는 거리감이 있어 보입니다.
그렇게 세간의 관심을 단숨에 끌어당기는 기획 자체가 가진 상업성으로 인해 대학이 가지는 아카데믹한 요소는 상처받을 수밖에 없고, 축제라는 전제 속에 즐거워야 할 축제 참가자들이 오히려 지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우리 나라 가야금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황병기 선생의 역작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가야금 교향악 대학축제'는 공연 외적인 면에서는 분명 성공하였다.
그것에 대한 음악적, 국악사적 평가는 좀더 진지한 논의를 통해 정리될 것이나 공연 외적으로는 활발한 국악담론의 장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이러한 교항악 축제가 지속될런지는 아직 쉽게 예상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국악계에 비평의 장은 열릴 듯한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우리 나라 문화계의 고질병인 주례사비평을 벗어난 진정한 비평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 공연이었다.
음악적인 측면에서 대두된 여러 가지 요소들은 좀더 진지한 논의를 통해 발전적인 결론을 추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공연은 황병기 선생의 바람대로 각 대학의 축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느냐의 문제와 더불어 교향악을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것이 일반인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느냐하는 과제를 안겨주었다.
그것은 이날 공연에 참여한 각 대학 지도교수들을 비롯하여 공연 주변에서 쓴소리를 거들었던 많은 후배 음악가들의 몫이 될 것이다. 세상은 하루에도 많은 사건들을 만들어낸다. 중요한 것은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들을 발전의 동인으로 엮어내는 일꾼들의 몫이며 또 사명이 아니겠는가.
황병기선생의 2년간의 역작에는 분명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것은 누가 무엇을 하건 동전의 양면처럼 호악의 요소가 반드시 존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을 지금 당장 결론지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날 축제에 긍정의 팔을 든 이나 부정적 견해를 가진 이 누구든 국악이 진정한 민족음악으로 자리매김하는 소명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란 점에서 이날의 축제가 일회성 이벤트로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을 통해 합목적적 방향으로 발전해나가야 함이 중요할 것이다.
이번엔 가야금이지만 다음에는 거문고, 해금, 대금 등등 특정악기의 대규모 축제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모처럼 국악계 안팍의 지대한 관심을 불어일으킨 '가야금 교향악 대학축제'의 또 다른 형태의 발전을 기대해 본다.
가야금은 발랄한 20대 처녀의 노래"
숙명가야금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김일륜 교수 |
가야금 교향악 대학축제를 가능케 한 음악적 환경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김일륜 교수라는 점에는 큰 이견이 없을 듯 하다. 자신 스스로 중견 연주가로서 젊은음악을 가장 적극적으로 연주함은 물론이고 숙명가야금오케스트라를 만들어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김일륜이 25현 가야금과 인연을 맺은 것은 상당히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체적으로 국악사에 기록될 내용은 1995년 국립국악관현악단의 2회 정기연주 때 박범훈 작곡의 <새산조>를 연주한 것이다. 마치 김일륜을 위해 작곡된 듯하다는 평을 받은 이날의 연주를 시발로 하여 김일륜의 25현 가야금에 대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뿐 아니라 우리 나라 최초의 최초의 가야금 중주단 서울새울 가야금 삼중주단을 선배인 박현숙, 김해숙등과 결성하여 가야금의 새로운 소리를 구현 하였다. 그랬던 김일륜에게 98년 숙명전통문화예술대학원은 더욱 젊어진 음악을 구가할 발판이 되었다. 학부에서 충분히 기초를 닦은 학생들로 가야금 연주단을 결성하여 99년 10월 창단연주를 무대에 올렸다.
특히 숙명가야금연주단의 3집은 국악과 팝과 클래식을 망라한 음악 편력을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또한 음반 판매 또한 상당하여 음반 판매 수익금으로 공연비용을 충당하고 있어 많은 국악단체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러한 김일륜과 숙명가야금연주단의 성공이 이번 가야금 교향악 대학축제의 보이지 않는 배경이 되었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가야금은 20대 처녀의 발랄한 목소리같아요" 라고 말하는 김일륜의 가야금 철학은 새겨볼 만한 일임이 분명하다.
출처 - 오마이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