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우리땅
 
<역사적 증거Ⅰ-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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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사기 *

고려시대 김부식이 편찬한(1145년) 삼국사기의 [신라본기] 지증왕 13년조와 [열전] 이사부조에 오늘날 우리가 독도로 인정하는 우산도에 대한 기록이 실려있다.

 독도는 현재에도 그렇지만 예로부터 울릉도의 기록과 함께 문헌에 나타난다.

삼국시대 이전에는 울등도가 독립적을 우산국(于山國)이라는 고대부족 읍락국가를 이루고 살았는데 그 영역은 가시거리 내에 위치한 독도를 포함해 울등도 주변의 소도서에 이르렀다. 여러문헌의 기록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우산국 사람들은 그 지형 및 토양으로 보아 반어반농민집단 생활을 하여 왔으며, 내륙보다 낮은 문화 수준이었으나, 신라 사람과 언어가 통하고 왕래도 있은 듯하다.

우산국 사람들은 본토에 귀속되는 것을 거부하며 살아왔는데, 신라의 이사부(理斯夫)가 하슬라 주 何瑟羅州: 溟州)의 군주(軍主)로 있으면서 우산국을 신라에 귀속시켰다.

독도가 울릉도와 함께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권에 편입된 시기를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이사부가 우산국을 귀속시킨 512년(신라 지증왕 13)때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후 지금의 울등도와 독도에는 신라의 문화가 계속 유입되었다. 현재까지 울릉도에서 발굴 ˙출토되고 있는 유적˙유물들은 우산국이 신라에 정복되기 이전에 이미 상당한 문화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정복이후 한반도 본토 문화의 활발한 유입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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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지리지

세종실록 원문을 그대로 뜻을 풀어보면 우산과 우릉 두개의 섬이 현(울진현)의 정동쪽 바다가운데 있다. 두섬의 거리가 서로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청명하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 신라시대에는 우산국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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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숙종 때는 독도를 ‘자산도’라 불렀다.
1693년(숙종 19)일본 어부가 독도와 울릉도 근해까지 출현하여 어로 활동을 하므로, 동래 어부 안용복은 일본으로 건너가 독도가 조선의 고유 영토임을 확인받고, 일본 어부들의 울릉도와 독도근해의 어로 활동을 금지토록 하엿다. 이를 계기로 조정에서는 매 3년마다 을릉도, 독도지역을 샅샅이 조사하여 지도와 함께 보고토록 하였다.
 
  
<역사적 증거 Ⅱ-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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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팔도고금총람도(朝鮮八道古今總覽圖)-제작연도: 1674년(현종14년)

 

김수홍이 목각본으로 간행한<조선팔도고금총람도>의 필사본으로 울릉도의 윗부분에 우산도라는 지명으로 독도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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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도 - 제작연도:18세기

18C경 제작된 도로서 우리나라전도와 팔도분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지도 강원도지역에는 울릉도 옆에 독도가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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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지도- 제작연도18세기 초 / 제작자: 정상익

18세기에 만들어진 이 지도는 울릉도와 독도의 위치와 크기가 비교적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고, 울릉도와 우산도(독도)가 본래 하나의 섬을 일컫는 말이라는 일본의 주장이 오류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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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tende la coree 조선전도- 연도: 1846년/ 편찬자: 김대건/ 규격: 59X100 ㎝

근대적 작도법에 의해 작성된 지도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다 15년이나 앞선 지도이다. 이 지도는 김대건이 우리지명을 프랑스 발음으로 표기하였으며 울릉도와 우산국(독도)를 정확히 우리 영토로 표시하고 있다.

1849년 “리용” <지리학회보>에 축소 수록 되었고 원본은 프랑스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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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프로트(J. Klaproth)의 ‘삼국 총도’- 제작연도:1832년
클라프로트(1783-1835)는 베를린 태생의 역사학자 및 언어학자로 대부분의 서구 언어뿐만 아니라 중국어와 일본어까지 능통한 당대 제일의 동양학 관계 학자 였다.
그는 베를린, 페테스부르크(현재 레닌그란드), 모스크바 등의 도서관에 소장된 동양학 관계자료의 정리를 책임맡을 만큼 권위있는 학자로 한국어의 기초도 익힌 적이 있다. 파리의 국립 동양어 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있으면서 [아시아 역사지도첩](1826년)과 [아시아의 제언어](1823년)등을 저술하였고. 1832년에는 영국왕실의 동양학 서적 번역기금을 얻어 일본에 살던 중국계 학자 임지평의[삼국통람도설]을 번역하였고 거기에 ‘삼국총도’ 및 ‘조선팔도 지도’를 별도로 첨가하였다.

 
이지도가 본래 1785년도에 중국과 일본의 자료를 중심으로 작성되었다는 점과 1832년에는 당대 동양햑의 권위자 클라프로트가 주석을 첨가하여 동양 3국에 관한 저서에 첨부되었다는 사실은 이 지도의 중요성을 입증시켜 준다. 임자평의 [삼국통람도설]을 번역한 클라프로트는 그 책 안에 부록 지도첩으로 ‘삼국총도’ 및 ‘조선팔도지도’를 첨가했다.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문자로 명기하고 있으므로 독도문제에서 상당히 중요한 자료이다.

 
                                                              
                                                     
                                                            
                                                                                            <자료출처:http://www.cybertokdo.com>

[출처] <역사적 증거 Ⅱ>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작성자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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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랜 역사의 기록들이 진실을 증명하듯 독도는 명백하게 우리 나라의 땅입니다.

오늘날, 모든 나라가 어우러져 다양하게 살아가는 시대에 힘의 논리로 인한 증거없는 왜곡된 진실을

무작정 아무 명분도 없이 우기면서 외교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그 만큼 나라와 나라간의 문제를 다루는 외교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다문화 즉 다양성을  많은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고 알아가려는 노력과 같이 제각각 나라의 역사, 고유 문화등을 바르게 인정하고 받아 들여야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오랜 시절부터 우리 나라 역사의 한 켠에 명백하게 살아 숨 쉬고 있는 우리나라의 바르고 명확한 역사가

나라의 실리를 앞세워 설득력 없이 터무니없는 주장들 앞에 이렇게 정정당당하게 외칩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독도는 대한민국 땅입니다~